by 눈빛 | 2007/07/06 11:05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7월 04일
En attendant Godot


Living is killing time.
하이데거는 일생 동안 '죽음'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추적했다.
그는 '공허의 공간'에 그냥 '내던져지는 존재'가 인간이라며, 거기서 인간은 '권태'라는 '존재적 기분'에 빠져
단지 '시간을 죽이는'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했다. 이런 견해에 카뮈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고,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기억속의 지속>에서 자신의 삶을 '흐물흐물 죽어가는 조갯살 같은 시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지의 인물 고도.
고도라는 존재는 디디와 고고를 권태로운 삶에서 구원해줄 그 어떤 것이다. 지금의 삶에서는 그 어떤 즐거움이나 희망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고도를 기다림으로 삶을 살아간다.
어제 왔던 곳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의미 없이 '공허한 공간'에 디디와 고고는 서로를 의지한 채,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권태 속에서 의미 없이 그저 말장난을 하고 게임을 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다. 삶의 구원이 다가올 그 순간만이 중요하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현재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루하지 않게 이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죽음=자유라고 볼 수 있다면, 이들은 삶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관계
디디와 고고는 서로를 의지한 채 살아간다. 고고에게는 디디가 있어야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 디디는 그런면에서 고고에대해 우월감을 갖지만 정작 디디가 떠날까 두려워한다. 서로를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 관계 맺음을 통해 존재감을 느낀다.
푸조와 럭키도 마찬가지다. 푸조와 럭키는 마치 매저키즘과 새디즘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어쨌든 둘 사이의 끈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그 누구도 먼저 그 끈을 끊고자 하지 않는다.

디디와 고고 그리고 푸조와 럭키는 권태로운 행위 가운데 맺는 관계다. 디디와 고고는 처음에 푸조를 혹시나 고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을 권태로움에서 구원해 줄 존재가 아닐가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푸조 또한 삶의 권태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또다른 고도를 기다리는 한 존재일 뿐이다. 푸조는 디디와 고고 또 럭키에게 자신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 행위를 통해 존재감을 느낀다.

너와 내가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다.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나, 관계함 없이 군중 속에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이야기다. 지금 당신 옆에는 당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줄 누군가가 있는가.

by 눈빛 | 2007/07/04 11:15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7월 03일
남한산성


 
 이마를 땅에 닿게 후금의 칸에게 삼배를 올렸다.
 치욕이다. 
 의와 예를 중시하는 조선의 왕실에게 그것은 죽음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죽음의 길이 곧 삶의 길이었다.
 남한산성안에 웅크린 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성벽이 무너졌다. 칸의 계획대로 조선의 묘당은 그렇게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치욕을 보지 않으려고 목을 메던 김상헌도 남은 생에 애정을 느꼈다. 

 

by 눈빛 | 2007/07/03 19:21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27일
동물농장

 

사회주의자이기를 소원했던 진중권은 자유주의자로 '전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기에는 내 안에 욕심이 너무 많더라.' 

 물론 나폴레온이 애초부터 평등 사회를 꿈꿨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평등'을 꿈꾸기엔 그 안에 너무 많은 욕심들로 채워져있었다. 나폴레온은 이상주의자를 숙청하고, 점점 원래의 농장 주인 '존스'보다 잔인하게 동물들을 지배한다. 그들의 기억을 지배하고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말이다.  결국 동물 농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평등 사회를 향한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사회나 절대적 '평등'이란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평등한 사회에도 지배층은 필요하다. 즉, 국가를 이끌어갈 조정자의 역할은 누군가 해야만 한다. 동물 농장에서는 그 역할을 인간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돼지들이 맡는다. 그런데 분명 이들은 이기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기심을 채울 수 있는 수단과 권위가 그들에게는 있다. 그들에게 평등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가지지 못함을 의미한다.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 지배층의 명품 밝히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자체가 북한 체제의 모순을 극명히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북한 스스로에게는 자신들의 건재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중국 광둥성의 평양냉면 집에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인사들이 모였다. 모임의 목적은 김정일의 생일 선물 준비를 의논하기 위함 이었다. 회의 결과 항공편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진 선물들은 은세공품, 주류, 명품 의류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혁명정신이란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기심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동물들이 힘들게 돌을 쌓아 만든 풍차와 같다. 그저 인민들이 희망을 갖고 신봉해야 할 어떤 것일 뿐이다. 풍차를 쌓기 위해 상처입고, 또 농장을 지키기 위해 인간과 싸우다 총에 맞아 죽어간 복서를 팔아 넘기고 나폴레온이 손에 넣은 것은 위스키 한 상자였듯이, 북한 지배층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이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한 채, 현재의 안락함을 누리는 그것 하나일지 모른다.

  

by 눈빛 | 2007/06/27 11:11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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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서평
2008/09/18   딜리셔스 샌드위치
2007/07/06   '야생초 편지' 황대권님의 책 이야기 '런던, 책벌레의 천국'
2007/07/04   En attendant Godot
2007/07/03   남한산성
2007/06/27   동물농장
2008년 09월 18일
딜리셔스 샌드위치

"우리 文化 뉴스가 더 많이 사랑 받기를"

이라며 국장님이 선물해주신 딜리셔스 샌드위치.

막판에 self-help로 변질되는 감이 있기는 한데,, 어쨌든 뉴욕이 어떻게 문화도시로 부상했으며,
뉴욕 문화의 흐름은 어떤지 짚어주는 부분은 좋다.

1950년대,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유럽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미국은 돈만 많은 도시로서의 뉴욕이 아니라, 문화의 중심으로서의 뉴욕을 욕심 부렸다.

마침 당시 부상한 추상표현주의화가 잭슨 폴록.
자율성과 자육로운 행위를 강조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의 사조와도 잘 맞아 떨어지고
동구권의 리얼리즘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
CIA가 적극 밀어줬고, 잭슨 폴록은 뉴욕의 피카소로, 뉴욕은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됐다.

전략적으로 후원해 문화 예술이 급부상했지만, 결국 돈이 몰리자 문화가 흥하게 되고,
또 흥한 문화는 돈을 불러들인다는 고런 흐름.

57번가에서 소호로, 소호에서 첼시로 옮겨가는 문화와 돈의 흐름.

그러니까 문화를 바라보는 전략적인 마인드로 문화를 살리면 돈이 따라오고 선순환이 반복될 수 있겠다는 그런
교훈인거다.

근데 난 잭슨 폴록 이후에 어떤 연결고리와 어떤 계기들로 인해 지금의 뉴욕이 됐는지,,
그게 더 궁금하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게, 참 광범위 하니까.
옷 입고 돈 쓰는 방법부터..관광단지에 이르기까지.
즉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문화 산업이 모두 포함되는 것인데,
전략적인 투자가 문화 도시를 만들어내기까지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사람들이 뉴욕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곧 문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냥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진짜 뉴요커들이 생활하는 방식을 따르고 싶어한다.
영화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샌드위치를 들고 센트럴 파크에 찾아가 런치를 즐기고 싶어하고,
관광객들을 피해 자리잡은 낡은 공장안의 클럽을 찾아가고 싶어하고,
골목 구석구석의 작은 갤러리를 찾아가 삶의 여유르 누리고 싶어한다.

처음에는 전략적인 방법으로 문화 도시가 됐을지 모르나
지금의 뉴욕 문화는 향유 문화가 문화 산업이 된 대표적 예다.

우리가 발굴해 낼 수 있는 문화산업은 고작,
한옥 마을과 영화 촬영장과.. 전통 찻집, 공예박물관..
그 안에 라이프스타일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향유문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도시적이지도, 그렇다고 전원적이지도 않은 ..
전통적이지도 그다지 현대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함??


 
by 눈빛 | 2008/09/18 11:01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7월 06일
'야생초 편지' 황대권님의 책 이야기 '런던, 책벌레의 천국'
[네이버 2006/06/16]
  http://blog.naver.com/mrbookman/50005326145


 

영어권의 책벌레라면 영국의 런던만한 곳이 있을까싶다. 런던은 서울과 인구가 비슷한 대도시이지만 다양한 문화유산의 보전과 그 아기자기함이 서울과 비교가 안 된다. 영국 사람들은 자기네 문화전통을 대단히 소중히 여기면서 옛 것을 웬만해서는 잘 고치려 하지 않는다.  한번은 런던대학 근처 타비스톡 공원에서 시대극 촬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세트설치 담당자가 한 일이라곤 거리의 전기 가로등을 가스등으로 바꾼 것 밖에 없었다. 그만큼 런던은 예전의 아기자기한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면서 골목마다 박혀있는 오래된 서점과 펍(pub:선술집)을 순례하는 것은 런던을 방문하는 책벌레들에겐 최상의 관광코스이다. 나는 관광이 아니라 유학 공부를 위해 런던에 2년 간 머문 적이 있다. 청춘을 몽땅 교도소 독방에 앉아서 책만 들여다보다가 세상에 갓 나온 내가 낯선 땅에서 갈 데라곤 오직 책방 밖에 없었다.

 

첫 번째 들른 런던의 책방에서 내가 제일 먼저 산 것은 상세한 런던지도책과 무려 224쪽으로 된 <런던의 책방>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런던시 경계 내에만 600개 가까운 책방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머무는 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책방들을 순례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흥분이 되어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으레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책방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책을 찾고 들여다보는 것이라 하루에 두 세군데 이상은 들르기 어렵다. <포일즈>같은 큰 책방에는 한 동안 아예 출근하다시피 다니기도 했다. 하도 오랫동안 책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가 머리에 피가 쏠려 책장을 붙들고 간신히 일어서는가 하면, 책을 들여다보다가 끼니때를 놓쳐 고픈 배를 움켜쥐고 길거리를 헤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므로. 런던의 관광명소들은 특별히 찾아다니지 않았다. 책방 근처에 볼만한 곳이 있으면 쉴 겸해서 들르면 그만이었다.

 

런던의 일반서점에 가보면 책의 진열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 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안 팔리는 장르인 전기와 역사가 책방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를 지배한 나라와 지배당한 나라의 차이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 역사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러한 역사를 일구는데 기여한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책방에는 늘 각종 전기와 역사서가 넘쳐난다. 그리고 <워터스톤>이나 <보더스>와 같은 대형서점의 또 다른 특색은 그 안에 카페와 책 읽는 공간이 있어서 고객이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대형서점에도 내부에 카페가 있는 곳이 있지만 사지도 않은 책을 가지고 들어가서 읽을 수는 없게 해 놓았다. 그것은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또는 지식의 공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보다 높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런던이 책벌레들에게 천국인 것은 단순히 책방이 많아서가 아니다. 책벌레들에게 일반서점은 아무리 많아도 별 볼일이 없다. 어딜 가나 똑같기 때문이다. 런던에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 전문서점이 많다. 그것은 아마도 수백 년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 많은 전문가들을 키워놓았기 때문이리라. 정치, 고서, 희귀본, 종교, 오컬트, 예술 및 공연, 건축, 디자인, 컴퓨터, 경영, 대안사회, 아동, 교통, 원예, 스포츠, 만화, 공상과학소설, 뉴에이지, 군사, 지도, 여행, 수공예, 외국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 서점이 있다. 이 가운데 런던이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임을 알려주는 책방들이 있다. 내가 체류기간 내내 가장 자주 들렀던 제3세계의 자주적 발전과 관련된 책만 파는 <Intermediate Technology>란 책방과 50여 개의 세계 여러 나라에 관한 책방들이 그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런던에는 300개에 달하는 외국어가 쓰이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지 상상이 될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런던에 가서 책방순례만 열심히 해도 전 세계의 문화를 어느 정도는 섭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런던 책방 순례의 백미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헌책방이다. 책방이 그렇게 많으니 헌책방도 당연히 많을 수 밖에. 때때로 화창한 봄날 동네 도서관이나 마을문고 같은 데서 길거리에 난전을 펼쳐놓고 오래된 책들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수 좋으면 여기에서 단 돈 몇 푼에 두꺼운 원예도감을 살 수도 있고 백 년 전에 출판된 유명 소설의 원본도 구할 수 있다.

 

나는 2년에 걸친 런던의 책방순례를 통해 영국문화의 저력에 대해 깊은 외경심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 단순히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집대성해 놓은 것 정도로 알고 있었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자본주의의 패권은 미국에게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영국이 문화에 있어서만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영국인의 습성과 마니아에 가까운 책방 주인들 때문이 아닐까.

 

글 : 황대권│그림 : Bookman

 

바우 황대권

생태공동체 운동가. 195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뉴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을 복역한 후 1998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출소 후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짓다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초청으로 유럽에 가서 한동안 인권활동을 했다. 영국에 있는 동안 슈마허 대학(Schumacher College)과 임페리얼 대학(Imperial College)에서 생태디자인 및 농업생태학을 공부하고, 2001년 10월 귀국하여 생태공동체운동센터를 설립하고 2004년 전남 영광으로 귀농하였다. 현재 '농.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과 교육위원장으로 생명평화운동을 펼치며 여러 매체에 생태공동체와 농업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있다.

 

2002년 <야생초편지> 출간하여 MBC TV 느낌표 선정도서, 동아 조선 중앙 문화일보 등에서 '2002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저서 : <백척간두에 서서: 공동체 시대를 위한 명상(1991년 사회평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황대권의 유럽 인권기행>, <야생초 편지> : 공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 역서 <가비오따쓰>, <새벽의 건설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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