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22일
포토저널리즘, 그 상한선과 하한선
‘포토저널리즘에 있어서 연출은 어디까지를 허용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한마디로 잘라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고 부득이 연출이 필요한 경우라면 그 사건의 본질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함은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조작이라는 의미는 최소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연출과 관련하여 문득 떠오르는 포토저널리스트 이름 중에 하나가 케빈 카터(Kevin Carter)이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아프리카에서 커다란 검은 독수리가 餓死 직전의 어린 소녀 옆에서 호시탐탐 덮치려는 순간을 촬영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이 특종사진에는 가끔 우리나라 언론사 면접관들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당사자의 열정이나 일에 대한 의욕을 확인해보려는 의도에서 우문현답 식으로 제시하는 이런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배가 침몰하여 승객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기자로서 그들의 생명을 먼저 구해야 할까, 아니면 보도를 위한 촬영을 우선시해야 할까?”

물론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땅히 생명구조가 우선시 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상투적인 답변을 듣고자함이 아니라 가끔은 수험생들의 의욕과 열정에 의한 기발한 답변들을 면접관은 기대하고 싶은 속셈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케빈 카터도 바로 이런 시험의 순간을 포착한 셈이었고, 그의 특종사진이 뉴욕타임스에 실린 후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 어린 소녀의 생명을 구하려는 노력이 우선시되었어야 했다는 비난여론에 두 달 정도 시달리다가 결국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자살이유가 그 특종사진에 대한 비난여론만이 아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카터는 그 사진을 찍고 神을 원망하며 울었다고 당시 뉴욕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위 사건은 사실 연출이라는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는 ‘이오지마’가 연출에 더 가까이 있다. 미 해병대 병사들이 성조기를 게양한 깃대를 함께 일으켜 세우는 그 장면도 사실은 사진기자의 요청에 의하여 더 큰 깃발을 달았고 한 번 더 올려달라는 부탁으로 연출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연출은 그 사안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어 문제되지 않는 범주로 양해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이 이오지마 상을 건립해 놓고 그 순간의 감격을 되새기는 미국인들을 보더라도 그 정도의 연출에는 거부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일본의 한 텔레비전에서 어느 PD가 폭력배들과 짜고 중학생의 린치사건을 연출한 사례에서는 그 담당 PD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89년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건이긴 하지만 역시 일본의 한 신문의 ‘산호초 오손’사건에서 산호를 더럽히거나 훼손한 사실이 사진기자의 자작극임이 밝혀지자 신문에 사죄기사를 싣고 기자는 파면되는 안타까운 연출사건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 사례로는 한 국영 방송사의 ‘수달’ 조작 사건이 있었다. 1998년 연구용으로 사육하던 수달을 강원도로 옮겨다 야생수달처럼 둔갑시켜 연출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관계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고 급기야 사과방송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 2001년에 역시 우리나라 굴지의 메이저 공영방송사 어느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양재천의 너구리 생포 장면이 연출로 조작되었음이 밝혀지면서 비난의 화살이 소나기우박처럼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비록 형태가 그런 식은 아니었지만 미국도 연출에 관한 한 예외가 될 수 없다. 13-4년 전 NBC의 데이트라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트럭폭발사건에서 그야말로 미국적인 영화촬영기법으로 연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트럭이 들이받으면서 폭발하는 문제의 장면이 미리 트럭에 점화장치를 설치한 연출이었는데 그 조작사실을 감추고 방영하였다가 들통이 나자 그 자동차제작사에게 손해배상은 물론 사과방송까지 하였던 것이다.

뉴스영상은 영상미보다는 리얼리티라는 사실성이 더 중요한 요소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연출사건을 접할 때 마다 개인적으로 아기 돌잔치 상을 연상하게 된다. 아기의 돌잔치 상에는 전통적으로 실과 연필과 돈을 놓고 그 아기로 하여금 그 중에 하나를 잡도록 하는 순서가 있다. 실을 잡으면 오래 살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 잘하고 돈을 잡으면 부자로 산다는 식으로 아기 장래를 축복하는 이 행사에서 돈을 좋아하는 어느 어머니는 아기가 돈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아기 손 가까이 돈을 배치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느 어머니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아이가 잡으려하면 그것을 멀리 옮겨놓거나, 심지어 지폐 한 장을 아기 손에 쥐어주고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돌 때부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반선천적으로 연출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요즈음 우리나라 텔레비전의 뉴스영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하여 담백해지고 솔직해졌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과거 한 때 연출을 못하여 그림이 어정쩡해지면 영상취재 실력이 없다고 나무라던 선배들도 없지 않았다. 시대가 흐르자 경제뉴스에서 으례 등장하던 지폐뭉치도 화면에서 많이 사라졌다.

현실적인 경제상황이 호황이든 불황이든 텔레비전 화면이 보여주는 은행에서는 돈다발이 금고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창구의 여자은행원은 또 어김없이 돈뭉치를 양손가득 움켜잡고 세는 그런 화면들이었다.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자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자신들의 현실에 대한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였고, 그런가하면 텔레비전의 주말 휴일스케치 기사에서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농어촌은 항상 바쁘고 일손이 부족한데 도시인들은 산으로 바다로 휴일을 즐기러 떠난다는 틀에 박힌 기사가 방영됨으로써, 가뜩이나 시골로 시집오기 싫어하는 처녀들에게 압박을 가해 농촌총각들의 혼사 길마저 막는다는 불평 아닌 불평도 있었다. 현실은 배고프고 힘들어도 텔레비전에서는 돈이 넘쳐나고 룸살롱과 고급 식당에 사람들이 붐비는 이런 연출화면이 결국 뉴스와 현실은 별개의 세상을 반영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인위적으로 연출된 영상으로 편집된 뉴스는 결국 우리와 시청자들 모두를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조미료가 듬뿍 가미된 연출식단으로 입맛이 길들여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현실과 부합되는 담백한 영상이 어색해 보이는 해프닝마저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책임 중 많은 부분이 소위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의 모든 이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산재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우리들 중에 누구라도 그러한 저널리스트들 중의 한명에 결코 속해 있지 않았다고 당당히 나설 수 있을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순간이 아닌가 한다.
류종현 기자 [bryan@imbc.com]
- 1984년 입사
- 심야출동, 카메라 출동. 걸프전 종군기자. 워싱턴 특파원
- MBC 아카데미,단국대,아주대 출강. 고려대학교 학사,석사,박사


이제 조금씩 뉴스를 이해하고
방송기자의 역할을 알아가는 과정-
영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by 눈빛 | 2008/03/22 12:1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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