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3일
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맥주에 인삼을 섞는다면… 특색 없는 한국 맥주, 혁명이 필요해”
 
[내가 본 코리아, 코리안] “맥주에 인삼을 섞는다면… 특색 없는 한국 맥주, 혁명이 필요해”

맥주에 대해 눈을 뜨려면 내가 가진 기본 룰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듯싶다. 만약 맥주가 소변 색을 띤다면 마시지 말라! 하얗거나 호박색, 밤색이거나 검은색을 띠는 것이 더 맛있을 가능성이 크다. 잘 찾아보면 한국에서도 이런 맥주를 찾을 수 있다.

원래 나는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쓰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선두 대선주자인 이명박씨와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조금은 가벼운(그러나 꽤나 중요한) 주제로 초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한국에는 좋은 맥주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10년도 더 전에 한국은 커피 혁명을 겪었다. 인스턴트 커피보다 더 맛있는 커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맥주에 대해서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 질 좋은 맥주를 위해 애쓰고 있다. 맥주에 대해 눈을 뜨려면 내가 가진 기본 룰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듯싶다. 만약 맥주가 소변 색을 띤다면 마시지 말라! 하얗거나 호박색, 밤색이거나 검은색을 띠는 것이 더 맛있을 가능성이 크다. 잘 찾아보면 한국에서도 이런 맥주를 찾을 수 있다.
노란 맥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맛이 쓰거나 김이 빠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맥주는 김이 빠진 감이 있는 데다 쌀 같은 곡물을 적게 첨가하고 저온살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맛이 많이 떨어진다.


내 이름(beck)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일어를 조금밖에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한 독일어는 알고 있다. ‘라인하이츠게보트(Reinheitsgebot)’, 즉 독일 맥주의 순도에 관한 룰이다.


400년이 넘도록 독일의 맥주에는 보리(또는 밀), 호프와 물만 첨가하게 되어 있었다. 독일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이 방식을 폐지하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독일 제조업자는 아직도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자랑스럽게 병마다 이 사실을 표기한다. 특별한 첨가물을 섞지 않아도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최소한 1300명의 맥주제조업자가 최소 10가지 정도의 전혀 다른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밀로 만든 맥주는 색이 하얗고 뿌옇게 나타나며 시큼한 맛과 달콤한 맛까지 날 수 있다. 더 오래 익은 곡물일수록 맥주의 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깊은 맛을 낸다.


대부분의 맥주는 독일이나 벨기에 또는 영국·아일랜드 스타일 중 하나로 주조된다. 사실 내가 아는 맥주 중 절반 이상이 이 지역들이 원산지이다. 이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벨기에 맥주는 상당히 특이하다. 가령 딸기를 더하는 식으로 순수한 독일 맥주제조법을 명백하게 거스른다.


벨기에의 가장 유명한 맥주(stella atois)가 최악의 맥주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레페(Leffe)다. 이는 브뤼셀 공항의 모서리마다에서 볼 수 있고 이태원의 ‘서드 얼라이 팝(third ally pub)’에서도 마실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맥주공장을 방문해 맛보지 않고서는 아일랜드를 여행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더블린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맛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기네스 스타우트는 맛이 좀 진한 데다 서울의 조선호텔과 같은 곳에서 마신다면 1만5000원은 줘야 한다. 흑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 서울 시내에도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은 기네스나 벡스에 한국 맥주를 섞은 것들이다.


맥주 애호가들은 세계 최고의 맥주 전문가인 영국 출신 마이클 잭슨의 때 이른 죽음에 슬픔을 표한다. 나는 그가 1977년 펴낸 ‘세계 맥주 가이드(The world guide to beer)’라는 책에 나와 있는 맥주 500가지 중 아직 60여가지밖에 맛보지 못했다. 그는 이 책에서 맛보기가 쉽지 않은 특이한 맛의 맥주를 소개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풍선껌, 바나나, 캐러멜, 초콜릿, 커피, 민트, 땅콩 맛 등의 맥주가 있다. 이 맛들은 독일의 순수한 맥주 제조방식을 거스르지 않은 채 주조될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국적 맥주제조업체들의 김빠진 맥주를 팔지 않는 곳이 없다.  그만큼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오늘, 맥주는 그 지역의 색깔을 보여주는 요추로 남아 있다. 거대 맥주업체끼리의 인수합병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작은 맥주 양조장이나 하우스 맥주집은 오히려 급증했다. 나는 여행할 때마다 이런 맥주집을 찾아다니려 한다. 파고(Fargo)나 다코타 같은 미국의 시골동네에서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든 어디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시골 맥주는 주로 그 지역의 특징과 맛을 담고 있다. 미국 메인주에서는 그 주에서 유명한 블루베리가 첨가되기도 한다. 미얀마는 건강식품인 파란 해조류에 속하는 스피룰리나로 맥주를 제조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필라델피아에서 만드는 ‘레그 리프터 라거(Leg Lifter Larger)’와 몬태나산인 ‘무스 드룰 브라운 에일(Moose Drool Brown Ale)’이다. 레그 리프터 라거는 말 그대로 강아지가 소화전을 향해 왼쪽 다리를 들고 있고, 무스 드룰 브라운 에일은 이름에서처럼 무스(북미산 사슴의 한 종류)가 달리고 있다. 내가 언급한 양조장과 하우스 맥주집들은 www.beerme.com에서 검색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맥주 혁명은 아직 초기 단계다. 동네 세븐일레븐을 방문하면 간혹 한국 제조업체가 만든 개성 있는 맥주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맥주는 특유의 맛도 없고, 개성 있는 맥주는 보기도 힘들다. 벨기에의 가장 유명한 맥주인 호가든(Hoegaarden)도 한국의 동네 마트에서 찾을 수 있지만 작은 것 한 병에 6000원은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트 선반은 밍밍한 노란 맥주 천지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하우스 맥주집은 강남역 근처에 모여 있다. 물론 몇 개는 강북에도 도전하고 있고, 서울 밖에도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은 독일식 맥주를 알맞게 섞어서 생맥주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플래티넘(Platinum)’은 가장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고 빨리 먹고 마신다면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명동과 강남에 있는 ‘바수스(Bassus)’는 유일하게 3리터의 맥주를 타워에 채워서 주는 곳인데 꼭지가 달려 있어 친구들과 나눠서 마실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중 한 가지는 평양 고려호텔에서 만든 맥주다. 이 흑맥주는 긴 밤 내내 호텔에 갇혀 있어야 하는 고통을 그나마 견딜 만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곳은 국제위기감시기구 사무실 근처 선술집이다. 교보빌딩 바로 한 골목 뒤에 자리하고 있는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라는 가게인데 정말 맛있는 밀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끝내주는 흑맥주는 물론이거니와 노란 맥주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독일 유학 시절 이런 선술집을 계획했다는 백경학 사장은 맥주잔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까지 배워왔다. 그러나 그가 기자라는 본래의 직업을 포기하고 술집을 연 진짜 동기는 영국 여행 때 부인이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다치면서부터라고 한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사회환경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알고 나서부터 백씨 부부는 술집에서 나오는 수익을 통해 재단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막 시작된 맥주 혁명은 이렇게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보다 많은 맥주 혁명이 필요하다. 나는 일본 홋카이도 공항에서 규슈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하우스 맥주를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병에 담은 하우스 맥주를 볼 수 없다. 재활용이 가능한 1~2리터 병에 손님이 맥주를 채워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하면 좋을 듯하다. 인삼을 섞은 맥주가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


/ 피터 벡 | 40세.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UC버클리대 졸업. 캘리포니아대 국제관계 및 태평양연구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실장, 2004년 8월 서울에 문을 연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서울사무소장 역임. 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국장.




by 눈빛 | 2007/11/13 20:20 | 세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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