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1일
We are still hungry.

' I am still hungry.' 
온 국민이 희망에 부풀었었던 2002년 6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당초 목표했던 월드컵 16강을 달성하고 했던 말이다. '난 아직 배고프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4강이라는 기적같은 신화를 만들어내고  한국 국민의 영웅이 됐다. 사람들은 영웅 신화를 좋아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이루어내는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한다. 그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만큼은 내 꿈 또한 가능하리라는 희망이 마음 속에 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한가지 영웅신화가 뜨고 있다. 바보 연기자에서 영화감독으로 탈바꿈한 심형래 이야기다. 수백억의 제작비를 들여 이른바 '블록버스터'라 하는 SF 환타지 영화 '디 워'를 만들어냈다. 미국 1500여 상영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코메디언이 한국 기술로 만든 영화를 영화 산업의 메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게다가 스토리는 한국의 전설을 택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아리랑도 울려퍼진다.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했던 일을 '영구'가 해낸 것이다. 모두가 이 영웅 신화에 감동할 듯 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심상치 않다. 

문제는 이 영화의 마케팅 방식이다. 영화의 강점보다는 그 외의 것, 특히 대중의 애국심, 휴머니즘을 자극하는 마케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미 500만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 역대 7위의 흥행 성적이다. 전문가가 보기에, 아니 전문가가 아닌 눈으로 보더라도 이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이야기 흐름은 영상으로 승부하는 영화로선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게다가 실사와 CG는 잘 섞이지 않는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이따금씩 등장한다. 그러나 일부 대중들에게 '디 워'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게다.

물론 상품의 평가는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관객이 좋다면 좋은거다. 그러나 관객들은 지금 객관적으로 영화만 놓고 평가하고 있지 않다. 영화사의 마케팅 방식에 빠져버린 게다. 마치 우리가 월드컵 4강을 이룬 것처럼, 이 영화를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 내고 싶은 게다. 한국은 미국에서 수입되는 헐리우드 영화를 일방적으로 소비해 왔다. 가끔 헐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이 불쾌하게 그려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문화 약소국으로서 항상 위축된 마음, 또 우리 문화를 당당히 내어 놓지 못하는 데 대한 배고픔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 감독이, 한국의 기술로 또 한국적인 스토리로 미국 시장에 내어 놓을 영화를 만든 것이다. 대중들은 이를 통해 그 배고픔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 상품이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히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평가에 있어 객관성은 담보되어야 한다. 수십만, 수백만의 대중이 상업적 마케팅 방식에 이끌려 객관성을 잃는 것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관객은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지, 감독의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배경만이 한국일 뿐, 스토리 자체는 삼류 헐리우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한국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안성맞춤인 아리랑이 흘러 나오는 것은 영화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영화가 갖추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비판적 격려를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애국주의나 휴머니즘이 아니더라도 작품 하나만으로도 세계에 내놓기에 부끄럼 없이 자부할 만한 작품이라면 모두가 기립박수를 칠 것이다. 영화를 통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것이다. 작품성, 그것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by 눈빛 | 2007/08/21 22:45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3)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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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눈빛 at 2007/08/22 16:11
[유레카] 이국주의 / 고명섭
유레카


고명섭 기자



» 고명섭 책·지성팀장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가 논란 속에 흥행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디 워>는 한국 영화에서 전례가 없는 독특한 팬덤 현상을 일으켰다. 심 감독 또는 <디 워>의 옹호자들이 영화의 발진에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적 논란의 한 축을 이루었고, 이후 논란은 영화인 대 비영화인, 비평 그룹 대 일반 관객으로 번졌다.
이 영화를 못마땅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 현상에서 민족주의·국가주의, 뭉뚱그려 애국주의의 과잉을 읽어냈다. 그러나 그런 개념적 표현 밑에는 이 영화에 담긴 ‘취향의 촌스러움’에 대한 감성적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화면에는 조선시대가 배경인 사극의 풍경과 최신 서구 판타지 영화의 풍경이 나란히 등장한다. 요컨대, <전설의 고향>과 <반지의 제왕>이 맞부딪치는 것인데, 그런 충돌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혹감을 줄 법도 하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는 전 세계 관객의 처지에서 보면, 이 낯섦은 하나도 낯설 것이 없다. <전설의 고향>이나 <반지의 제왕>이나 현실 자체와 무관한 판타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디 워>의 경우는 한국 전통의 소재를 중심에 놓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말하자면, <디 워>의 영화 내적 전략은 애국주의가 아니라 이국주의(이그조티시즘)다. ‘여의주’니 ‘이무기’니 하는 번역 불가능한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 이국주의의 한 양상이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것도, 영화의 논리상 자연스럽다. 못 들어본 민속음악은 낯섦의 효과를 낸다. 다만 그 이국취미가 정작 국내에서는 애국취미로, 다른 한편에서는 저급취미로 이해되었다. 철학자 강유원씨는 어디선가 “비평은 고작 취향에 개입하는 권력일 뿐”이라고 했다. 취미의 문제가 권력의 문제로 바뀌는 국면을 떠들썩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논란일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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