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28일
파시스트들의 나라 한국, 그 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가톨릭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영진 형제 이야기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해야 하는가?

 "진보란 비이성적인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지난 4월30일, 28세 대학생 김영진씨는 1년 2개월 동안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죄명은 병역거부다. 그는 카톨릭 신자다. 그는 병역거부가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에 그어질 빨간줄을 기꺼이 감내했다. 현재까지 1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집총을 거부하고 실형을 선고 받았다. 살인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양심과 신념, 그에 떳떳한 사람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비이성적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손에는 진보가 달려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 체제다. 군대에서 전체주의적 질서는 개인의 자유보다 더욱 중요하다.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권위주의적 군대식 문화에 개인의 자유가 끼어들 틈이 없다. 군대의 질서는 그곳에서 2년여를 훈육 받은 한국 남성들에 의해 재생산되어 사회 전체로 퍼진다. 결국 전체주의적 질서가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기제로 사용된다. 그렇기에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보수층에서는 더욱 이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이들에게 병역 거부라든지 병역 기간의 축소라든지 하는 일은 허용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소외된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의 질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질서는 너무나 공고하여 사람들이 그 질서 밖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옹호하는 입장이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전체주의적 질서의 공고함을 방증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마치 기회주의자들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이 사회의 모든 차별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회의 ‘질서’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체주의적 무관용이 문제일 뿐이다.

전 세계의 80여 개국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 중 40개국에서 대체복무를 실시하고 있다. 즉 법률로써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처럼 다름을 받아들일 줄 아는 관용이 한국에는 없다. 개인의 희생보다 집단을 앞세우는 전체주의적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나도 가니까 너도 가라’는 더 이상 안 된다. 나는 가지만 너는 너의 자유에 따라 갈 수도 있고 안갈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체 복무를 하는 조건아래 말이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사회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고, 그것만으로는 배가 아프다면 복무기간을 길게 늘일 수도 있다. 

사람의 신념, 그리고 양심은 하루 이틀 사이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완성된 신념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삶의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말이다. 때로는 그 신념이 남들과 다를 수도 있고 사회의 통념들과 부딪힐 수도 있다. 이 때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다. 사회와 싸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진보는 이렇게 싸워온 사람들에 의해 쓰여져 왔다. 그리고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한국 사회와 싸우고 있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가져올 진보를 기대한다. 

 

 

 

 

by 눈빛 | 2007/05/28 11:42 | 하이퍼그라피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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